*Number Line

 

선이 하나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직선이다.

 

선에다가 같은 간격으로 표시를 해 놓는다. 오른쪽으로는 자연수를 넣고 왼쪽에는 음수를 넣는다.

 

직선 위에 수가 놓여져 있다. 아직 이것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점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Number Line

가운데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 플러스 라고 하고(기호는 생략한다) 왼쪽으로 가면 - 마이너스라고 한다. 그게 보이는 전부다.

 

직선이 있고(Line) 수(Number)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직선(Number Line)이라고 부른다. 수가 직선위를 따라 정해진 위치에 앉아있다. 우리가 이 직선에서 볼 수 있는 숫자는 유한하지만 이 선의 길이는 무한속에 존재한다. 선이 무한으로 연장되면 수도 무한이 된다.

 

무한대의 개념을 수직선으로 처음 알게된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선의 영속성과 인간의 유한한 시간을 비교할 때 허탈함과 신비함을 동시에 느낀다.

 

 

수직선

수직선이 꼭 오른쪽와 왼쪽으로만 갈 필요는 없다. 위쪽과 아래로 가도 된다. 여전히 직선이 있고 같은 간격으로 숫자가 놓여져 있다.

 

위아래로 보니 우리가 사는 땅은 0이고 하늘은 위 지하나 바다는 아래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가는 선에서는 못느꼈는데 위와 아래로 구분해보니 위계서열이 느껴진다. 위에 있는 것이 아래 있는 것보다 더 크다, 라고 느꼈다면 충분하다.

 

이것이 무한한 수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무한에 대한 속성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태어난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 다는 것을 안다. 한편으로 자신은 죽지만 이 세계는 계속 진행 될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도 그 정신적인 소산물은 남는 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반복하여 자각하는 것은 무한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무한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면 건강한 사람도 병으로 눕는다. 오늘날은 우리나라는 영양이 좋아져서 배고파서 죽는 사람은 없지만 자살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왜인가?

 

http://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0/06/01/2020060100129.html

 

대한민국 자살률 OECD 1위 ‘오명’… 인구 10만명당 26.6명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인구 10만명당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2018년 26.6명으로 2017년보다 2.3명 많아졌다.1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개한 ��

biz.newdaily.co.kr

이 수직선(Number Line)이 인간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고 괴롭게 만들 수도 있다. 중학교 수학과정이라고 무시할 건 없다. 수직선에서 충분히 세계와 인생의 깊음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학문은 필요할 때마다 수학의 힘을 빌려서 자기의 설득력을 강화시킨다. 인구성장률과 경제 성장률을 숫자로 표시하고, 원자력발전소의 에너지의 양을 계산하고, 컴퓨터에서는 온갖 시뮬레이션에 수학이 동원된다. 그렇게 아이들(어른이들)이 혼이 빠지듯 빨려들어가는 게임은 전부 수학 시뮬레이션이다.

현대의 컴퓨터는 세상 모오든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글로벌 온난화에 따른 지구멸망 시나리오도 예측가능함 ㅜㅜ

 

수학교육에 불만족하다?

 

 수직선은 중요하다. 복잡한 수학의 분야에 도전하기 전의 기초를 세우는 시작이다. 그런데 사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오랫동안 수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실패하고 있다. 아니 실패는 아닐 것이다. 의도된 것이었다. 공교육의 산물은 아직도 사람을 기르는 것 보다는 탑티어 진학을 위한 아이들을 거르는 체망이 되었다. 학생들은 이 필터를 빠져나와야 S대를 갈 수 있고 Y대 의대를 갈 수 있고,,, 라는 식으로 머리속에 각인이 되어있다.

 

왜 뛰는가? 그냥 앞에서 뛰닌깐 뛰는거야

그것까지는 좋다.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한다는 취지로 국가의 경쟁력에 보탬이 된다. 문제는 그들이 체망을 통과하고 남겨진 어른이들이다. 노잼을 경험했기에 수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 일상생활에서 이미 잘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단계의 지식을 탐구할 동력을 잃어버린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교육이 우수한 사람을 더 잘 걸러낼 수록 남은 사람을 더 후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안타까운 세상의 이치다. 누구에게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가졌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되있다.

 

해묵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수 하나를 대할 때도 의미를 가지려는 취지이다. 어떤 학문이건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으면 된다.

 

수학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최근에는 수학에 대한 접근법이 다각도로 변화되고 있다. 주로 매대에서 미는 것들을 보면 거의가 일본인이 쓴 책들이다. 글쓴이도 거의 일본의 교양서적을 많이 본다.

 

이런거 보면 아직 우리도 멀었구나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깨봉 조한봉 박사님 유튜브를 보면 또 아 역시 희망이 가까이에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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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풀리는 수학

국어가 되면 수학도 된다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수록 국어를 파고들어라“수학은 푸는 걸까? 읽는 걸까?”한참을 고민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 이 책의 저자인 나가노 히로유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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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봉 박사님이 초등학생에게 가르치는 삼각함수 Feat 어른이들

 

수와 인간의 본성

 

수를 다루며 인생의 유한함과 세계의 무한함을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자 속성이다. 소수의 천재나 특정 그룹에게 법적 권리로 속한 것도 아니다. 수학을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다.

 

예를들어 한달에 월급을 100만원 받는 사람은 생활비 지출을 어떻게 관리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심지어 이번달 뿐 아니라 10년뒤까지 이미 머리속에 계산을 하면서 살아간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것은 자동이다. 그는 미래에는 수입이 나아지고 사회의 복지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까지도 숫자에 포함시켜서 계산한다. 지금 10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10년뒤에 그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더 나아질 수도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동전 하나라도 착실히 저축

 

다만 확실한 것은... 만약 미래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간다. 우리나라는 아직 대부분 미래에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동남아시아 저개발 국가(개발도상국)의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내일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이들은 눈동자 부터 다르다.

 

절망의 이미지, 미래가 더 나아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달에 100만원의 100배인 1억을 버는 사람들도 미래를 계산한다. 한달의 생활비를 계산하고 10년뒤를 그린다. 지금 한달 수입이 1억원이라면 10년뒤 1억원을 벌 수 있을거라고 믿는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글쎄... 이것이 논란거리다. 우리가 평범하게 월급받는 사람들보다 일반인을 초월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의 원리상 성장이 있으면 반드시 퇴보가 있기에 만약 어떤 사람이 한달에 1억원을 유유히 벌고 있다. 그것이 10년 20년 30년 유지될 확률은 극히 낮다. 오히려 월급쟁이가 30년동안 두배정도 인상된 연봉을 받고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성장형 드래곤볼이냐 완성형 원펀맨이냐

 

동전을 쌓아놓고 포즈를 취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왜냐하면 또다른 스타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는 바뀌고 열정이 폭발한 스티브 잡스같은 배고픈 청년이 세상에 나와 스타가되고 막대한 수익을 벌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스타(한달 수입 1억)는 이 젊고 영리하고 겸손하기까지한 청년을 상대해야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로 쏠릴지 명확하다. 원래 스타의 자리에 오르는 것 보다 내려오는게 더 힘든 법이다.

 

등산을 해보면 안다. 오르는 것은 기를 쓰고 오를 수 있다. 간신히 도착해 정상을 누리는 기쁨도 잠시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가파른 산의 정상이라면 발을 한번 헛디디면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짜릿한 것을 더 많이 누릴 수록 하산길이 더 무서워진다. 산에 어둠이 깔리고 위험이 찾아오기 전에 내려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두개의 감정, 정상의 짜릿함과 하산의 두려움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100만원 버는 사람이나 1억 버는 사람이나 똑같이 수의 개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1억 버는 사람이 더 우수한 것이냐? 그것은 잘 모르겠다. 1억원이면 어떤 한 시점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마치 저 수직선의 위에 있는 것과 같다.

 

수직선과 인생

 

수직선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숫자들은 덧셈과 뺄셈이 가능하다. 그 말은 저 안에 포함된 변수들(Variable)이 사람이니까 올라갈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면 아래와 같다.

pink_person[0] = 1억원

blue_person[1] = 500만원

sky_person[5] = 100만원


green_person[7] -= 100만원

pink_person[0] -= 9500만원 #하면 pink_person[0]는 삭제하고 blue_person 의 클래스로 바꿔야 한다.

green_person[7] += 200만원 # sky_person 클래스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다 숫자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성적은 상위권/하위권, 연봉은 고액/박봉이 갈리고, 키도 크고 작고, 몸무게도 무겁고 가볍고 (이때는 적은게 좋다 ㄷㄷㄷㄷ) 이런 것들에 대한 일차적 조작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수직선 Number Line이다. 수에는 논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도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뉴턴시대까지도 수학과 철학을 함께 했다는 것이 단순히 그들이 특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둘다하면 중2병에 걸리기가 쉽다

 

수학과 철학

 

수학-철학 관계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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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재미있으려면 의미가 있어야 하고, 개그맨처럼 웃겨야 한다. 무한한 수직선에 인생을 표현하면 고작 정수로 100개의 간격이 있을 뿐이다. 그걸 알면 시간 아까우니까 하루라도 더 재미와 의미 이 두 마리 토끼 다 잡고 살아야 한다.

 

인간은 미스테리하고 이상한 존재다. 무한대 우주의 시간속에 찰나의 순간 있는 존재일 뿐인데도, 하루를 의미있고 열심히 살기위해 노력한다.

먹방도 열심히 보며 치킨을 주문한다

 

수직선을 100만대로 축소하면 인간의 나이 100은 보이지도 않는다;; ㅜㅜ

 

그것이 희망이다. 수를 이야기 하며 인생을 더욱 가치롭게 나눌 수 있다.

 

수학을 아무리 하위 학문으로 쪼개고 나눠도 이 세상 만물을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다같이 모여 앉아서 수학의 재미와 인생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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